일년일독성경
예레미야 27-29장
매일성경묵상
살전 4:1-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2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4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6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라
7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8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9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10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에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욱 그렇게 행하고
11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12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오늘 본문은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에게 어떻게 행해야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지에 관한 구체적인 지침을 줍니다. 가장 먼저 바울은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고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태도로 ‘거룩함’을 언급하며 성적 윤리에 대한 말을 합니다. 왜냐하면 바울 당시 헬라인들은 성윤리에 대해 무감각했습니다. 성적으로 타락했을 뿐 만 아니라 성적인 만족을 위해 탈선은 물론이거니와 타인의 아내까지도 넘보는 일이 종종 일어났습니다. 사회적으로 아내는 자녀를 출산하고 가정을 돌보는 하나의 도구로 인식되었고, 이혼은 자기 기분대로 행해졌으며, 혼외관계를 갖더라도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성적인 욕망이 금지되기는 커녕 용인되고 조장되는 시대였습니다. 그런 시류 속 바울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성적 방종에 동참하지 않는 구별된 삶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함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바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자세로 ‘형제 사랑’을 말합니다. 본문 9절에서 10절입니다.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에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욱 그렇게 행하고”
그런데, 형제 사랑과 관련하여는 데살로니가 교우들에게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다며 그들을 칭찬합니다. 그들이 교회 내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온 마케도니아에 있는 형제들, 곧 마케도니아에 있는 교회들에게도 사랑을 잘 실행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들의 삶의 자세에 대해 바울은 앞으로도 그런 삶을 살기를 권유합니다.
셋째로 바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오늘과 오늘 일에 충실한 삶’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본문 11절에서 12절입니다.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이는 외인에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우들에게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자기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권고합니다. 당시 주의 날, 곧 종말이 시작되었다는 거짓 가르침에 속아 일상의 일을 포기하고 생업을 내려놓는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났습니다. 일은 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든 도와주시겠지 하며 무작정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등장했습니다. 그에 대해 바울은 그런 그릇된 신앙풍조에 동요하지 말고 하던 일에 전념하기를 권유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믿지 않는 불신자들로부터 빈축을 살 뿐 만 아니라 결국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황에 내 몰리게 될 것이 뻔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성적 윤리를 지키고, 형제를 사랑하고, 성실한 삶을 사는 것이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향해 나가야 함을 권면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에는 ‘거룩’이라는 단어가 실종되어 가고 있습니다. 거룩한 삶으로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된 모습을 보여주는 그리스도인들이 차츰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처음 정착할 때 한국 교회는 술, 담배, 성, 도박 등으로 부터 철저히 구별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며 사회에 인정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구별됨이 서서히 무너졌습니다. 너무 율법적인것 아닙니까? 성경에 담배이야기는 아에 없는데 너무 속박하는 것 아닙니까? 사회적으로 동성연애를 인정하는 분위기인데 교회가 너무 뒤처지는 것 아닙니까? 라는 질문과 공격으로 마치 어느 정도는 인정해 줘야 복음을 전파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논리로 사회와 교묘히 섞이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너희의 거룩함이라는 이 말씀에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