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성경말씀
잠언 13-15장
매일성경묵상
히브리서 10장 1-18절
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3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6 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8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15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언하시되
16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17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18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과 구약의 제사를 계속 비교하는데, 예수님이 구약의 제사와 다른 세가지 점을 분명히 밝힙니다.
첫째는 구약의 희생 제사와 달리 예수님 제사는 영원합니다. 저자는 율법은 단지 하나님의 축복을 보여주는 그림자일 뿐 진정한 실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림자는 결코 실체가 될 수 없지만 실물의 윤곽을 드러내 줄 수 있습니다. 실체가 드러나면 그림자는 아무 소용도 없게 됩니다. 율법은 다가올 복음의 영광을 보여주는 희미한 윤곽에 불과한 것입니다. 만일 율법이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을 완전하게 해 주었다면 그들은 더이상 죄의식을 갖지 않게 되었을 것이고 따라서 제사 드리는 일이 중단되지 않았겠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율법이 불완전한 것이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제사가 그 목적을 달성했더라면 더 이상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그 이전에 드린 제사 이후에 저지른 위반 행위만을 다룰 뿐 그 뿌리가 되는 죄는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제사가 반복적으로 드려진 사실은 그 제사가 적절하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황소와 염소의 피는 죄를 없이 하지 못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제사는 순종을 기초한 영원한 제사 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자발적으로 따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그분의 최고의 목적이셨습니다. 7절에 나오는 두루마리책은 구약에 기록된 내용을 언급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순종은 구약에도 예언 되었듯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오셨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은 즉흥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셋째, 예수님의 제사는 용서를 베풀어주는 영원한 제사 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제사는 하나님을 거역한 사람들에게 영원한 용서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들은 비효과적인 희생제사를 끝없이 반복해서 관장했습니다. 어떤 희생 제사는 해마다 속죄일에 드려졌고 또 매일 드리는 제사도 있었습니다. 11절은 구약의 제사들은 모든 과정이 그저 무익한 것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서 있는 자세는 일이 계속 되고 있음을 말합니다. 앉아 있는 자세는 일이 완수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대제사장들은 그들의 사역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 서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의 값을 지불하시고 용서를 베푸시고 앉으셨습니다.
이 세상에도 숭고한 희생이 있습니다. 자녀를 위한 희생이 있을 뿐 아니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희생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2001년 1월 26일 일본의 한 지하철 역에서 술 취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자 철로에 뛰어들어 젊은 나이에 죽은 이수현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수현씨에 의해서 생명을 구하게 된 일본인은 이수현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일시적인 죽음의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삶을 보장 받은 것은 아닙니다. 수년전 성탄절을 앞둔 12월 어느 날, 아르메니아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부상한 비극적 대참사였습니다. 그때 9층짜리 아파트가 무너지면서 생긴 철근과 콘크리트 틈새에서 스잔나라는 어머니와 가이아니라는 네 살 된 딸이 가까스로 목숨을 유지한 채 구조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처럼 빨리 구조되지 않고 하루 이틀 사흘 자꾸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가이아니는 점점 기진 맥진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머니 스잔나는 언젠가 TV에서 조난 당한 사람들이 먹을 것, 마실 것이 없자 피를 나누어 마시던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스잔나는 주변에서 유리조각을 찾아 자기 팔뚝을 그어 흐르는 피를 사랑하는 딸의 입에 떨어뜨렸습니다. 그렇게 수일을 버텼고 극적으로 구조대에 발견되어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의로운 행동이 딸을 살렸습니다. 딸의 죽음을 막았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부모님이 자녀들이 혹은 배우자가 죽음에 직면한다면 그들을 대신해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자녀와 부모님의 삶을 연장하는 데 여러분이 희생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삶을 줄 수는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삶을 보장하십니다. 그 보혈의 피를 의지하는 사람만이 영원한 삶을 얻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믿고 의지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