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성경말씀
왕상 11-14
매일성경묵상
요 15:1-17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17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
어제 주일 설교를 통해서 예수님이 참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의 가지라는 의미에 대해서 함께 말씀 나눴습니다. 오늘은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집중해서 묵상해 보기 원합니다.
왜 예수님은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명령하셨을까요? 이유를 알려면 사랑 안에 거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을 내어 주신 희생적 사랑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을 공간적인 개념으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추상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그 사랑안에 있는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이 구별 된다는 뜻이죠. 예수님의 사랑 안에 있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심판에 이르지 않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상황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거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거하라"는 의미는 예수님이 자신의 생애 내내 성부의 사랑 안에 거하셨던 것과 똑같습니다. 사랑 안에 거하면 예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을 실망시켜드리지 않을 것이며, 예수님을 기쁘시게 할 일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당연히 사랑 안에 거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계명을 준수하는 일을 수반하게 됩니다. 복음서를 읽으면 예수님의 아버지에 대한 순종이 자주 언급됩니다. 그리고 그 순종은 자신의 생명을 인류의 구원을 위해 내어주신 십자가에서 절정에 이릅니다. 불트만이라는 신학자는 성자께서 성부의 사랑 안에 ‘거하시는 일’을, 계시자로서의 순종의 사역에서 성취되는 “성부를 위해 사는 일”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일'은 예수님이 명령하셨던 사랑의 실천을 행하며 사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삶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14절에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주님의 친구가 된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말에 순종하는 것을 주종관계로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친구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종관계에서 누군가의 말을 듣는 것은 사회적 계약으로 일어나는 반 강제적 행동입니다. 내가 주인의 말을 듣지 않았을 때 받게 되는 불이익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죠. 하지만, 친구는 다릅니다.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나 부탁을 들어주는 친구의 행동은 사랑을 근거로 행동합니다. 예수님의 명령은 사회적 계약이 아닙니다. 내가 그 명령을 수행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구속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진심으로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삶을 살려고 한다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 주셨듯이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사는 일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우리가 끝까지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다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열매를 보시며 기뻐하시고, 하나님 나라 확장에 우리를 사용하실 것입니다.
런던 타임즈가 친구의 정의에 대해서 상금을 걸고 응모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당선된 1, 2, 3등을 소개합니다. 3등으로 당선된 대답은.“친구란 기쁨을 더해주고 슬픔을 나누는 자이다” 기쁠 때 만나면 기쁨이 더 커지고, 슬플 때 만나면 슬픔이 반으로 감해지는 자가 친구라고 정의했습니다. 2등으로 당선된 정의는 “친구란 한 보따리의 동전이다” 라고하면서 내 모든 사정을 다 이해하고 동정하고 도와주는 사람을 친구로 정의한 것입니다. 그리고 1등으로 당선된 대답은 “친구란 온 세상이 나에게서 떠나고 다 나를 버릴 때 내게로 오는 자가 진정한 친구다.”라고 정의했습니다. 1등으로 당선된 정의와 같이 여러분은 세상사람 다 떠나도 곁에 남아있을 친구가 있습니까! 진정한 친구를 가지고 계십니까? 예수님은 내게 오신 진정한 친구입니다. 이제 우리가 그에게 가야 할 때 입니다. 예수님의 진짜 친구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