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성경말씀
출애굽기 8-11장
매일성경묵상
요한복음 6장 1-15절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들은 사람들이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특히 기적 말고는 삶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었던 식민지 삶을 살았던 팔레스타인의 일반 백성들에게 예수님은 그토록 기다렸던 단비와 같은 일이었기에 또 어떤 기적을 볼까 싶어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들 중에는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으며 따르던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2절에서 보듯이 대부분은 예수님 자체보다는 예수님이 보여주는 표적을 기대하며 따랐습니다. 그런데 그 숫자가 5000명에 이르렀습니다. 어린아이와 여성의 숫자를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적게는 7000에서 10000명이 족히 넘는 무리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보실 때 걱정이 되셨습니다. 마을에서 떨어져 산 위에 이 많은 사람들이 올라왔으니 이들에게 먹을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산행이 마치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세미나 같았으면 스스로 먹을 것을 챙길수도 있고, 제자들이 미리 구입했을 수도 있겠지만, 즉흥적으로 예수님만 바라보고 산위로 올라온 수 많은 무리들을 보시며 예수님은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고 물어 보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시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정치인들이나 유명 연예인들 같으면 사람들이 운집한 것을 보며 뿌듯하게 생각하거나 그들의 힘을 이용해 더 큰 권력과 인기를 얻을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배고픔을 보셨습니다. 그들에게 먹을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고 물으십니다. 물론 예수님은 다 계획이 있었지만, 빌립이 어떻게 대답하는지 듣고 싶으셨습니다. 빌립은 아주 현실적인 대답을 합니다.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만약 이 상황에서 예수님이 저에게 물으셨어도 저도 비슷한 대답을 했을 것입니다. 저 같으면 “예수님 돈도 돈이지만 어디서 음식을 사서 가져 옵니까? 예수님, 이 사람들 해 저물기 전에 빨리 돌려 보내야 합니다.” 라고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때 안드레가 등장합니다. 안드레는 한 아이가 가져온 도시락을 보이며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가 있습니다.”라고 하며 한마디 더 붙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제자들은 현실적이었습니다. 제자들의 이런 반응을 비판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저는 예수님 옆에서 군중들을 인도하고,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역할을 했던 제자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리 책망받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도 빌립고 안드레를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알려 주십니다. “이 사람들로 앉게 하시니…” 그곳에는 잔디가 많아 사람들이 다 앉았는데 그 수가 5000명쯤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바로 어린아이가 가져온 음식으로 축사하시고 나눠주십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다 주신 후 남은 조각을 버리는 것이 없게 거두라고 하실 때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본문의 표적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굶주린 백성에게 채움을 주시고자 함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남은 조각을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셨습니다. 물론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지 말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배 부르게 먹고 남은 것이 있을 정도로 충만히 채워 주시는 분임을 보여 주시고자 함이었습니다. 카슨이라는 신학자는 “열두 바구니가 남았다는 사실은 거의 확실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모두 충분히 채워줄 것을 가지고 계셨다. 사복음서 모두 열둘이라는 숫자에 주목하고 있다. 포이디어의 힐라리 ( Hilary, 주후 4세기) 때부터 5천명을 먹이신 기적과 열두 광주리는 유대인들을 위한 주님의 채워주심이며, 4천명을 먹이신 기적과 일곱 광주리는 이방인들을 위한 주님의 채워주심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입니다.
세상을 보십시오. 풍요로운 현대의 미국에도 1,400만명의 어린이들이 빈곤 속에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 중 1200만 명의 아이들이 늘 배고픔 속에 살아가고 있으며, 미국의 한 지역에서는 약 4분의 1이 넘는 아이들이 충분한 영양을 취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라고 합니다. Tufts 대학에 있는 기아, 빈곤, 영양 정책 연구소의 연구에 의하면, 매년 미국의 18세 이하의 아이들 중에 20퍼센트의 아이들이 굶주림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매일밤 10만명의 집 없는 어린이들이 길거리에서 밤을 보낸다고 합니다. 각종 기발한 전자 상품들이 집안과 자동차들을 장식하며, 첨단 기술 주식으로 인해 즉석에서 백만장자들이 태어나는 현실이지만, 그 화려함과 번쩍임에도 가난한 사람들 인생의 아픈 부분을 다 덮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은 빈곤에 빈곤을 더할 뿐입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헌신, 나눔, 축복이 우리 현실속에서 일어날 때 우리 모두는 충만히 채움을 받을 것이며 나누고 넘치도록 부어주는 축복을 누릴 것입니다.
세계 곳곳에 일어나는 기근, 전쟁, 화산폭발 등으로 가난과 두려움 속에 있는 분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주님의 충만함이 전해 질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