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5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6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7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8 그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요한의 서신서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요한의 서신서를 통해서 알 수 있는 요한의 성격은 무엇입니까? 사랑이 가득하고, 온유하고, 자상한 이미지의 사도 아닙니까? 그런데 요한이 처음부터 이런 성격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사도 요한은 함께 예수님의 열 두 제자에 속했던 야고보의 형제였습니다. 이 두 사람을 예수님께서는 “보아너게”라고 부르셨는데, 이 말은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입니다. 이 별명을 통해 우리는 젊은 시절 요한의 성격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요한과 야고보는 열심, 열정, 야망을 가진 형제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초창기에 요한은 때때로 경솔하고 무모했으며, 성질이 급했고, 공격적으로 행동했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서 그는 열 두 제자가 아닌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 하지 못하도록 금지합니다(마가복음 9:38-41). 예수님께서는 부드럽게 꾸짖으시며, 그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돌아서서 그분을 비방할 사람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9:51-55에서 우리는 이 형제가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거부한 사마리아인들을 멸하기 위해 하늘에서 불을 내려 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은 다시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부족한 마음을 책망하셔야 했습니다. 요한은 야망도 있어서 예수님의 나라가 완성되면 자신과 야고보가 예수님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게 해 달라는 청탁도 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다른 제자들과 일시적인 분열이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요한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경험하고, 성령 충만을 받으며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그는 크고자 하는 자는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일을 기록한 유일한 복음서입니다(요한복음 13:1-16).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신 섬김의 행위에 큰 영향을 받았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예수님께서 당신의 어머니를 돌보는 일을 맡길 정도로 청년 요한을 믿으셨고, 요한은 그 책임을 매우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 날부터 요한은 그녀를 자기 어머니인 것처럼 돌보았습니다(요한복음 19:25-27). 천국에서 특별한 자리를 얻게 해달라는 야망을 보였던 요한은 연민과 겸손을 지닌 사람으로 바뀌었는데, 이것이 그의 후반 사역의 특징을 이룬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한은 장로 가이오를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라고 표현합니다. 그의 말에서 사랑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이오 장로에게 편지합니다. 먼저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며 축복합니다. 이를 소위 삼중축복이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영적인 축복, 사회적 축복, 육체적 축복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표현은 “잘 됨”, “잘 되고"입니다. 이 단어는 “유오두스다이"라는 헬라어인데, “유”(잘)와 “호도스" (길)가 합성된 “유오도오"에서 유래된 것으로 문자적으로는 ‘좋은 길로 인도됨', ‘좋은 여행을 함'이란 의미를 갖지만, 은유적으로 ‘번영하다,’ ‘성공하다'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요한은 가이오의 만사가 번영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요한은 자신이 왜 가이오를 사랑하고, 그를 마음다해 축복하는지 3절에 밝히는데, 가이오 장로가 진리안에서 행한다는 말을 형제들을 통해서 듣고 “심히 기뻐"했기 때문입니다.요한이 심히 기뻐한 이유는 진리를 반대하는 거짓 교사들의 온갖 위협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게 복음을 지킬 뿐만 아니라 복음 안에서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가이오가 이렇게 진리의 복음을 고수하며 그 안에서 행한 행위를 요한은 한마디로 6절에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가이오 안에 사랑이 있기 때문에 그가 가진 진리를 수호하고, 진리 안에서 행함을 증언합니다.
오늘 말씀을 읽으며 사랑의 사도 “요한"이 어떻게 그의 성품이 변했는지 묵상하며, 또한 그가 기쁨이 충만한 이유를 묵상해 봅니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런 사랑이 있는지, 기쁨이 충만한지 반추해 봅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되었습니까? 오늘 하루를 시작할 때 기쁨으로 시작하십니까? 3중 축복을 받는 것도 좋지만, 사도 요한처럼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