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7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니
20 이는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이라
21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23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24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요한일서가 기록되고 읽혔던 시대에는 영지주자들이 기독교를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은 선하지만, 육체와 함께 육체적 욕구들은 악한 것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영지주의에 영향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육체적인 욕구들을 절제하는 것을 신앙적인 삶으로 오해하는 경향이있었습니다. 그들은 음식을 절제하고, 잠을 줄이고, 말을 적게하며, 성적인 욕구를 억제하는 것을 경건한 삶을 위한 방편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이원론적 신앙은 예배당 안에서의 모습과 일상생활에서의 모습이 서로 다른 이중적인 삶으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만, 이웃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본 요한은 답답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죄의 종노릇하던 우리를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시는 사랑으로 건져주시고 주님의 친구 삼아 주셨습니다. 따라서, 참된 경건은 육체의 욕구를 절제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그 사랑으로 형제를 섬기는 방식으로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요한은 세가지 방법을 말하는데, 첫째, 예수님과 같이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둘째, 형제의 궁핍함을 보았다면 도와 줘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셋째, 말과 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이같은 사랑의 실천이 가능할까요?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랑을 할까요? 궁핍함을 보고 도와주는 사랑의 실천은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어떻게 모든 일에 진실함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요한은 이 모든 일들이 가능한 경우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있을 때 임을 강조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형제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물질적인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목숨까지 버리며 사랑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거한다면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있을 때 우리는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힘으로 살게 됩니다.
기독교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내가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 완벽한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가던 그 존재로 회복된 것이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교회 안에는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여전히 교회 십자가는 많은데 사랑이 없다는 탄식으로 가득합니다. 여러분… 이번 성탄절 만큼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심을 경험하는 성탄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잘 합니다. 하지만, 사랑하기 힘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힘써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함께 실천해 보는 성탄절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