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성경말씀
에스겔 10-12장
매일성경묵상
갈 3:19-29
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20 그 중보자는 한 편만 위한 자가 아니나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라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라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율법의 한가지 목적과 두가지 특징에 대해 설명합니다. 먼저, 율법은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고 합니다. 범법함이란 “바른 길에서 벗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율법은 바른 길을 제시하고 사람들이 그 길을 벗어날 때 그 사실을 알게합니다. 그러나 율법은 한시적인 것입니다. 율법이 끝나는 시점은 후손 (그리스도, 곧 메시아)이 오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율법은 아브라함과 믿음보다 열등합니다.
그러면 21-22절에 바울은 “율법과 하나님의 약속 사이에 갈등이 있는가?”라는 또 다른 질문을 제기합니다. 바울은 결코 갈등이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생명을 주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율법의 목적은 세상의 모든 것이 심판 아래 정죄를 받아 죄에 매여 있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한 것입니다. 즉, 율법은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을 들어내는 것입니다. 이런 정죄는 사람에게 죄의 형벌에서 용서와 해방, 곧 그리스도안에서의 용서가 필요하게 만는 것입니다. 그래서 24절에서 바울은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몽학선생: 개역성경) 되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초등교사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선생님의 이미지가 아니라, 늘 따라다니는 종의 개념에 가깝습니다. 유대인들의 문화에서는 종이 각각 주인의 자녀 가운데 한 명을 맡아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감독하는 일을 보조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엄격한 교관과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만일 주인의 자녀가 허락을 받지 않고 학교를 벗어나거나 잘못을 저지르면, 이들은 아이에게 삿대질을 하며 엄격한 말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지적하고 체벌을 했다고 합니다. 바울은 율법은 죄를 지적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똑바로 행하지 않으면 큰 벌을 받게 된다는 것을 위협하기 위해 주신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가 완벽한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 은혜를 경험한 우리는 더이상 초등교사 아래 있지 않습니다.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26절에서 바울은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율법 아래 있을 때는 어린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성령침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합하게 되었고, 그리스도로 옷 입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로마 사회에서는 아이가 자라 성년이 되면 아이들의 입은 옷을 벗고 어른들이 입는 토가 (toga, 로마인들이 입는 헐렁한 겉옷)를 입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성년으로서의 시민권과 의무를 갖추었다는 것을 표시합니다. 마찬가지로 갈라디아 교인들은 율법이라는 옛 옷을 벗어버리고 초등교사의 관리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요?
오늘의 찬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