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 성경말씀
전도서 4-6장
매일성경말씀
이사야 46장 1-13절
1 벨은 엎드러졌고 느보는 구부러졌도다 그들의 우상들은 짐승과 가축에게 실렸으니 너희가 떠메고 다니던 그것들이 피곤한 짐승의 무거운 짐이 되었도다
2 그들은 구부러졌고 그들은 일제히 엎드러졌으므로 그 짐을 구하여 내지 못하고 자기들도 잡혀 갔느니라
3 야곱의 집이여 이스라엘 집에 남은 모든 자여 내게 들을지어다 배에서 태어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업힌 너희여
4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내가 업을 것이요 내가 품고 구하여 내리라
5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누구와 짝하며 누구와 비교하여 서로 같다 하겠느냐
6 사람들이 주머니에서 금을 쏟아 내며 은을 저울에 달아 도금장이에게 주고 그것으로 신을 만들게 하고 그것에게 엎드려 경배하며
7 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그의 처소에 두면 그것이 서 있고 거기에서 능히 움직이지 못하며 그에게 부르짖어도 능히 응답하지 못하며 고난에서 구하여 내지도 못하느니라
8 너희 패역한 자들아 이 일을 기억하고 장부가 되라 이 일을 마음에 두라
9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10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11 내가 동쪽에서 사나운 날짐승을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뜻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반드시 이룰 것이요 계획하였은즉 반드시 시행하리라
12 마음이 완악하여 공의에서 멀리 떠난 너희여 내게 들으라
13 내가 나의 공의를 가깝게 할 것인즉 그것이 멀지 아니하나니 나의 구원이 지체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나의 영광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시온에 베풀리라
본문에 나오는 벨과 느보는 태양신 샤마슈와 함께 신 바벨론 제국 (주전 626-539)에서 영향력이 가장 컸던 우상입니다. 가나안의 신 바알처럼 바벨론의 신 마르둑 (Marduk)에게는 벨(주)라는 칭호가 주어졌습니다. 신들의 왕, 만신전의 우두머리인 마르둑은 바벨론 도성과 제국의 영화를 상징했습니다. 느보는 바벨론에 인접한 보르시파의 우상으로 지혜와 글을 담당했다고 합니다. 신들의 족보에 따르면 느보는 마르둑 (벨)의 아들로 바벨론 신년 축제인 아키투 축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당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벨과 느보의 무능력을 풍자적으로 고발하고 있습니다. 벨이 엎드러졌고, 느보가 고꾸라졌습니다. 침략하는 적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사람들이 신상을 수레에 싣고 안전한 곳으로 옮깁니다. 축제 때 메고 다니던 화려하고 거대한 신상들이 이제 피곤한 짐승에게 무거운 짐으로 지워집니다. 우상들은 숭배자들이 떼매고 다니던 생명 없는 물건일 뿐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신상들 뿐 아니라 옮기던 자들도 엎드려져 적에게 사로잡히게 됩니다. 바벨론의 신들은 자기 형상도, 숭배자도, 신상을 옮기던 짐승도 지켜주지 못하는 헛것일 뿐입니다.
짐만 되는 바벨론 신들과 달리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업고 안아서 키우셨습니다 (3절) 그리고 4절에 보면 1인칭 독립 인칭 대명사를 (내가) 다섯 번이나 사용하면서 (히브리어 성경) 이스라엘에 대한 독점적 - 책임적 관심을 보여 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책임지고 보호하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에 대한 그분의 헌신과 열정은 늘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우상과 비교되는 것 자체를 거부하십니다. 5절에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누구와 짝하며 누구와 비교하여 서로 같다 하겠느냐” 이어서 6절에는 사람들이 금과 은을 쏟아부터 우상을 만드는 것을 한탄스럽게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우상을 만들기 위해서 금전적 지출을 아끼지 않습니다. 도금장이가 금과 은으로 화려하게 마무리한 신상이 주문자에게 넘겨지면 사람들이 어깨에 올려 메고 자리에 갖다 놓고 흔들리지 않게 고정합니다. 생명이 없는 물건이기에 움직이지 못하고 사람들이 소리 질러도 듣지 못합니다. 역설적이게 생명이 있어 움직이는 사람이 생명이 없는 우상에게 도와달라고 부르짖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어제도 말씀드렸듯이 많은 기독교인들이 은연중에 우상을 섬기는 것 아십니까? 한국에서 성도님들이 휴대폰에 귀엽게 생긴 황금 돼지 인형을 달고 다니는 것을 봤습니다. 그냥 귀여워서 달고 다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황금돼지가 돈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뭘 잘못하는 지도 모르고 성경공부 시간에 자랑스럽게 말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눈에 보이는 다른 우상 하나쯤 갖는 것도 문제 될 것없다는 혼합주의적 생각을 하는 경우는 없는지요?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입니다. 아무 힘도 발휘할 수 없는 우상을 의지하는 나의 행동을 보신 하나님은 어떤 마음으로 우리를 보실까요?
내 삶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의지하는 모든 것 내려 놓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하루 되기를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