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암송 60구절 - 5
일년일독 성경통독
역대하 1-3장
출 10:21-29
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
22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내밀매 캄캄한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23 그 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 온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는 곳에는 빛이 있었더라
24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25 모세가 이르되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제사와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26 우리의 가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나
27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들 보내기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28 바로가 모세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
29 모세가 이르되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다시는 당신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
하나님은 여전히 완강한 바로와 애굽에 아홉번째 재앙을 일으키십니다. 10 가지 재앙을 도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9번째 재앙은 도표에서 보듯이 가로 방향의 두가지 다른 재앙, 세 번째와 여섯 번째 재앙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사전 경고 없이 발생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을 향해 손을 내밀어 흑암을 일으키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흑암은 “더듬을 만한 흑암이 될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사람이 어둠을 느낄 수 있는 흑암’이라는 뜻입니다. 원문대로 사람이 느낄 수 있는 흑암이라면 엄청난 ‘모래 폭풍'으로 이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사람들이 집에서 나올 수 없었습니다. 나일강 유역을 벗어나면 사막뿐인 이집트에서 이런 모래 폭풍은 일상적인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아무도 경험해 보지 못한 초자연 급의 모래 폭풍이 불게 하신 것으로 추론 됩니다. 3일 동안 지속된 모래 폭풍의 흑암으로 인해 이집트 사람들은 밖에 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빛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관찰 사항들이 있습니다. 첫째, 이 흑암의 재앙은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을 예고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컴컴 했던 유월절 ‘밤중에' 이집트의 모든 첫 태생이 죽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혼돈과 붕괴로 돌아가는 역창조의 주제가 엿보입니다. 사실, 앞에 나온 재앙들도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일시 적으로 무너지는 현상이기에 역창조 사건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창조로 인해 이집트는 창조의 창조의 질서로부터 붕괴되는 국가로 전락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는 빛이 있게 하셨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재 창조에 대한 분명한 암시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빛과 어둠을 나누심'으로써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중심한 재창조의 작업을 시작하십니다. 셋째, 앞서 모든 재앙을 이집트 신에 대한 심판으로 해석할 수 있었는데, 여기서 흑암의 재앙은 이집트의 주신인 태양신에 대한 심판일 수 있습니다.
태양신에 대한 심판이 일어나자 바로는 급히 모세를 불렀습니다. 다시 협상에 들어갑니다. 그들의 예배 여행을 허락해 주겠다고 양보하는 척하면서 또 다시 단서를 붙입니다. 자녀들을 포함해서 모두가 떠나도 좋지만, 가축은 남겨두고 떠나라는 제안입니다. 그러나 유목민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삶의 근간이자 생명줄인 가축을 놓고 떠나라는 것은 받아들이지 불가능한 조건입니다. 나아가 이스라엘의 제사는 제단에 짐승을 태우는 방식이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몰고 가야 합니다. 단호게 바로의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바로도 최종적 협상 결렬을 선언합니다.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바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힘을 직접 경험했지만 욕심에 사로잡혀 최후의 심판이 있을 때까지 협상하며 내려 놓지 못합니다.
바로의 모습을 통해서 인간의 나약함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자신의 것이 아니 것을 내려 놓으면 될 것을 끝까지 버티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모습이 있는데, 하나님… 이것만은 안됩니다. 여기까지는 안됩니다. 일주일에 한시간만.. 하루에 10분만.. 하나님은 우리의 삶 전체를 원하시는데, 자꾸 조건을 제시하며 마치 하나님을 위해 선심쓰듯 신앙 생활 하는 모습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일부분이 아닌 “나" 자체를 원하십니다.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 거래하며 조건을 제시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성도님들 모두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기쁨으로 쫓는 귀한 하루 되기를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