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일독 성경 말씀: 레위기 1-4장
매일 성경 묵상: 누가복음 9장 37-50절
37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새
38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아들이니이다
39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
40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4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42 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43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그들이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길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44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하시되
45 그들이 이 말씀을 알지 못하니 이는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긴 바 되었음이라 또 그들은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47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48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49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오실 때 큰 무리가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무리중의 한 사람이 소리 지르며 예수님께 나와 절박한 심정으로 외 아들을 봐 주시길 간청합니다. 하나 뿐인 아들이 귀신들려 갑자기 부르짖고, 경련을 일으키며, 거품을 흘리게 하고 몹시 몸을 상하게 한 후 겨우 떠나갔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달라고 요청햇지만 그들은 무력했습니다. 예수님은 직접 귀신을 쫓아내기 전에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는 권위를 받고도 실패한 이유를 지적하십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꾸짖으십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는 문구는 구약에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부패한 광야 세대를 꾸짖을 때 사용하신 표현입니다. 부패한 마음은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져 윤리적으로 타락한 상태를 의미합니다.제자들이 윤리적으로 타락한 흔적이 보이지는 않지만 46절부터 제자들이 누가 큰지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예수님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교만한 마음에 사로 잡혀 있었기 때문에 패역한 세대라고 꾸짖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귀신들린 자의 아버지에게 아들을 데려 오라 하실 때 귀신은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을 방해합니다. 여기서 거꾸러 뜨린다는 말은 마치 레슬링 경기에서 바닥에 집어 던지는 동작을 가리킵니다. 귀신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예수님께 나가는 것을 방해합니다. 바닥에 던지기도 하고, 듣지 못하게 만들고, 비참한 상태로 내몰아 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치유하시고 아버지에게 돌려주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고, 그들이 행하는 모든 일 또한 놀랍게 여겼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귀에 담아 두라 하시며 앞으로 예수님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을 예언하십니다. 예수님이 귀에 담아 두라 하신 이유는 사람들이 지금은 위엄에 놀라지만, 이들이 변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군중이 될 것이기 때문이고, 그 날이 왔을 때 놀라지 말라는 의미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수난을 예언하는 비장한 말씀을 하셨는데, 제자들은 믿음 없고, 패역한 모습을 보입니다. 예수님 앞에서 제자 중에 누가 크냐는 변론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답답한 마음으로 시청각 교육을 하시는데, 어린 아이 하나를 당신 곁에 세우시고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어린 아이는 사회적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어린아이는 사회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가장 낮은 위치에 있습니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자신의 결정을 내세울 수 없었고 어른들의 뜻에 복종하고 어른들에게 의존해야 했습니다. 스스로 생존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고대 팔레스타인과 같이 명예와 수치를 중요시 여기는 사회에서 사람의 명예와 지위는 그 사람이 함께 만나고 식사하는 타인의 지위에 의해 결정됩니다. 사회적 약자를 영접하고 그들과 친하게 지내는 사람의 지위는 낮은 등급으로 내려간다고 합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면서도 지위와 명예도 상승할 것으로 기대하며, 그들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명예와 지위를 누가 획득할 것인지 논쟁했습니다. 이런 문화와 반대로 예수님은 어린 아이를 ‘내 이름으로’ 영접하도록 가르치고 계십니다. ‘내 이름으로’는 ‘나 때문에’와 동일한 의미입니다. 어떤 사람을 그 사람의 신분이나 지위에 따라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관련지어서, 즉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생각으로 영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낮은 자인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낮은 모습으로 오시고 낮은 자와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그를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사회와 공동체에서 가장 작은 자를 영접하면 하나님을 영접한다는 논리가 되는 것이죠. 명예와 수치의 문화에 비추어 보면 가장 작은 자를 영접하는 사람은 하나님, 즉 가장 큰 분을 영접하는 것이므로 가장 높은 명예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따라 사는 제자들이 큰 자가 되는 길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교회 공동체는 낮은 곳을 지향함으로 높은 곳을 지향하는 사회에 도전하도록 부름 받은 곳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영접함으로써 지위에 기반을 둔 사회의 가치를 뒤짚는 자들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이렇게까지 예수님이 어린아이를 옆에 두시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 쫓고 있다는 말을 들은 요한은 귀신을 쫓아낸 사람이 열두 제자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행위를 금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금했다는 단어는 독특하게 미완료 시제로 사용했기 때문에 요한이 지속적으로 금하는 반응을 보였음을 의미합니다. 요한은 ‘그가 당신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자신들의 지휘와 통제를 따르지 않는다고 통제한 것입니다. 요한은 자신과 열두 제자들이 예수님 옆에서 특권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요한의 태도는 “어린이”를 영접하는 이야기에 나타난 예수님의 교훈과 대조됩니다.
본문 말씀을 묵상하며 내 자신을 돌아봅니다. “어린 아이”를 영접하며 겸손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신앙의 연수와 지위를 생각하며 목이 곧은 백성으로 살아가는지 스스로 돌아보며 겸손히 주님께 나갑니다.
예수님의 난해한 말씀 14편이 업로드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계획을 조금 수정하여 1. 물고기에서 한세겔을 꺼내 성전세금을 내는 이유 2. 마태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 3. 누가복음에 나오는 겉옷을 팔아 검을 사라는 말씀에 대해서 함께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