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린도전서(1 Corinthians) 1:10 - 1:17
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14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5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6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는 아테네와 함께 그리스의 2대 도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특별히 희랍철학은 위대한 스승들을 중심으로 해서 여러 학파로 발전했습니다. 예를 들면, 위대한 스승을 중심으로 해서 플라톤학파, 에피큐리어스 학파, 스토아학파 등이 있었습니다. 어떤 학자는 당시 그리스에는 중요한 철학 학파가 50여개 이상이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 고린도 지역의 사람들이 자기가 배운 스승에 따라 여러 학파로 나누어진 것과 같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역시 동일하게 교회 안에서도 자기가 좋아하는 영적 지도자를 중심으로 여러 개의 파벌을 만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소개된 네분파의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어떤 사람은 바울에게 속했다고 말합니다. 바울에게 속했다고 하는 자들은 주로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기독교 신앙으로 개종한 자들 일 것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였기 때문에 이방인 개종자들이 모였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하여튼 그들은 바울을 너무 존경한 나머지 다른 지도자들을 배격하면서까지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변호한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향한 바르지 못한 충성심을 비난합니다. 그리고 아볼로에게 속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학자로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였고 웅변적인사람(행 18:24-28;딛 3:13)인 것 외에 그를 알 수 있을 만한 자료는 없습니다. 다만 고전3:16에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라는 말로 유추해 보면 그가 고린도 교회에서 상당한 역할을 한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풍부한 학식으로 인해 지식층의 사람들이 그를 추종하였을 것이고 그들은 곧 바울을 멀리하고 아볼로를 지도자로 세우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과 아볼로가 대립적이 거나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다음은 게바에게 속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게바'(*,케파스)는 '바위'(rock)라는 의미를 가진 아람어 '게바' 음역으로 베드로의 아람어식 이름입니다. 베드로가 당시에 고린도에 있었는지의 여부는 알 길이 없습니다. 혹자는 이 파를 바울에 대항하는 율법주의 사람들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의 분열이 교리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을 옹호하면서 생긴 파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베드로에게 예루살렘에서 지도를 받은 유대인 신자들이 그의 권위를 배경으로 하여 자연스럽게 모여 그를 추종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는 베드로의 이름을 헬라식으로 부르지않고 아람어로 부른 사실이 뒷받침해 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하는 파입니다. 이 파가 어떤 성격인지 파악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혹자는 고린도 교회 내의 가장 보수적인 태도를 지닌 한 분파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고린도 교회의 분파문제는 신학적인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것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추측하건대 이 파는 위의 세파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교훈을 들은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당파인 듯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기들이야말로 그리스도에게만 속하였다고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그들이 추종했던 영적 지도자들이 이런 파벌을 부추겼을까요? 바울이나 아볼로, 게바, 예수 그리스도가 서로 싸웠습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영적 지도자와는 아무 상관없이 고린도교회 성도들 자신들이 ‘누구를 더 좋아하느냐?’ ‘누구에게 속했느냐?’를 가지고 다투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으로 ‘내가 누구를 더 좋아한다’ ‘나에게 영향을 준 분이 누구이다’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당시 고린도 지역의 세속적인 생각을 그대로 교회로 가지고 들어와서는 철학자를 따르듯이 교회 안에 분파를 만들고, 서로 분쟁하면서 교회를 흔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분쟁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교회가 분쟁함으로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이 분쟁의 문제가 고린도 교회를 흔들어 놓는 세속화의 첫 번째 위험이라고 지적한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바울은 세가지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13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침례를 받았느냐” 첫 번째 질문은 ‘그리스도가 어찌 나뉘었느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한분이시고 그분의 몸인 교회도 하나인데, 왜 그리스도를 찢어 놓으려고 하냐는 질문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더냐?’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두 번째 질문을 통해서 자신을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너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까?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들을 위해 자신 목숨을 내어 놓으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피 흘려 대신 죽으신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바울의 세 번째 질문은 ‘너희가 누구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느냐?’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바울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습니다. 사실 침례란 그리스도와의 신비하고 영적인 연합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6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나니..’ 무슨 말입니까? 침례를 통해 우리는 주님과 함께 죽고, 주님과 함께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 침례를 받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은 그리스보와 가이오, 그리고 스데바나 집 사람들에게만 침례를 베풀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자신을 보내신 것은 침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했습니다. 침례라는 어떤 종교적인 의식보다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이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라고 자신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던진 도전적인 세 가지 질문에는 한 가지 답밖에 없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그 분이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그 어떤 사람도 우리의 구원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는 명령을 온전히 수행 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 마음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품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가능합니다.
맥체인 성경통독
신명기 6장, 시편 89편
이사야 34장, 계시록 4장
오늘의 암송 요절
고린도후서 4:5.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For we do not preach ourselves, but Jesus Christ as Lord, and ourselves as your servants for Jesus' sa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