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24:17-27]
17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들의 말을 듣고
18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으므로 그 죄로 말미암아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19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사 다시 여호와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경고하였으나 듣지 아니하니라
20 이에 하나님의 영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그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
21 무리가 함께 꾀하고 왕의 명령을 따라 그를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죽였더라
22 요아스 왕이 이와 같이 스가랴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베푼 은혜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의 아들을 죽이니 그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 하니라
23 일 주년 말에 아람 군대가 요아스를 치려고 올라와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이르러 백성 중에서 모든 방백들을 다 죽이고 노략한 물건을 다메섹 왕에게로 보내니라
24 아람 군대가 적은 무리로 왔으나 여호와께서 심히 큰 군대를 그들의 손에 넘기셨으니 이는 유다 사람들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이와 같이 아람 사람들이 요아스를 징벌하였더라
25 요아스가 크게 부상하매 적군이 그를 버리고 간 후에 그의 신하들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들의 피로 말미암아 반역하여 그를 그의 침상에서 쳐죽인지라 다윗 성에 장사하였으나 왕들의 묘실에는 장사하지 아니하였더라
26 반역한 자들은 암몬 여인 시므앗의 아들 사밧과 모압 여인 시므릿의 아들 여호사밧이더라
27 요아스의 아들들의 사적과 요아스가 중대한 경책을 받은 것과 하나님의 전을 보수한 사적은 다 열왕기 주석에 기록되니라 그의 아들 아마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요아스 왕처럼 드라마틱 한 삶을 산 사람도 없습니다. 갓난 아기때 왕궁에서 탈출하여 6년간 성전에서 자랐고, 7세에 왕이 됩니다. 고모부이자 제사장이었던 여호야다가 그와 함께 있을 때는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길을 행했는데, 여호야다가 떠난 뒤 급격히 180도 변한 삶을 살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여호야다가 죽은 뒤에 유다 방백들이 요아스 왕에게 절하고 왕은 그들의 말을 들었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방백은 사르라는 단어로 사용되었는데, 이 단어는 “지배권을 행사하다”를 의미하는 동사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이 단어가 성경에서 사용될 때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사용되었습는데, 때로는 군왕들에게, 때로는 지휘관들에게 이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본문의 방백이 어떤 직책을 가진 사람인지 정확하지 않지만 그들은 권력과 재력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요아스를 찾아와 어떤 말을 했습니다. 17절에 요아스가 “그들의 말을 듣고”라고 하십니다. 방백들이 어떤 말을 했을까요? 어떤 말을 했기에 그들의 말을 듣고 요아스왕이 하루 아침에 180도 달라졌을까요? 요아스를 협박했을까요? 아니면 회유했을까요?
요아스는 그들의 말을 들은 후 이렇게 변했습니다.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겼으므로.”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더 비참한 것은 이런 요아스를 책망하는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여호와의 전 뜰 안에서 돌로 쳐 죽인 것입니다.
이일로 인하여 하나님은 요아스를 징벌하십니다. 23절에 일 주년 말에 라는 것은 스가랴가 죽은 해가 가지 전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신속히 징벌을 시행하신 것입니다. 아람 군대가 치고 올라와 요아스 왕을 말로 유혹한 방백들을 다 죽이고 결국 요아스도 크게 부상하게 하십니다. 부상 당한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들을 죽인 피로 말미암아 신하들에게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읽으며 요아스의 변화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은 죄성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이 죄성을 누르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회적인 규범으로, 도덕성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살아가려고 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사회적 규범과 도덕성에 성령 충만함을 더하며 과거의 죄의 성품을 버리고 살아갑니다. 이런 삶은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갈 때 가능합니다. 성령 충만은 일회성의 사건이 아닙니다. 우리는 꾸준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야 과거 육신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요아스는 우리가 왜 성령 충만한 삶,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린 삶을 끝까지 살아야 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여호야다 제사장이 살아 있을 때는 그에 의해서 하나님께 이끌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고, 자신의 죄의 성품을 누룰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야다가 죽은 뒤 요아스는 그의 죄성을 통제할 장치를 잃어 버린 것입니다. 통제 안되는 죄성이 방백들의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통제안되는 삶을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거룩하고 순결한 삶을 사는 것은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반대로 우상을 섬기고 타락한 삶을 사는 것은 내 느낌대로, 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기 때문에 편하고, 쉬운 일입니다. 요아스의 타락은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요아스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죠. 거룩한 삶을 사는것, 하나님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은 이 세상에서 부자연스럽기 때문에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의 열매는 세상이 주는 즐거움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요아스는 스스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갖는 성숙한 삶을 살지 못했기에 죄의 성품을 완전히 들어낸 삶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런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성령 충만함으로 인도될 때 죄의 성품은 사라지고 하나님이 찾으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될 수 있습니다.
맥체인 성경통독
역대하 1장, 요한일서 1장, 미가서 7장, 누가복음 16장
오늘의 암송요절
로마서 12장 9-10절
9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